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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유업을 받든 연구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거 직후부터 한결같이, 이들의 고민과 행보에
                         아낌없는 후원과 지지를 보낸다.
[횡포] Hey,  |  2009/12/20 22:54
오늘날 진정으로 순진무구한 사람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거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않은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희망은 이 사람들이 갖는 희망의 총합보다 언제나 크다.
[횡포] Hey,  |  2009/11/18 22:59














대체인간에 대한 강한 집착 속에는 형용할 수 없는 자기결핍이 있다.
다음 세대를 통하여 사회로부터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어떠한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사회를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희망을 포기하게 된다.

[횡포] Hey,  |  2009/10/19 17:05

ⓒ myself by Nikon FM




















                      잊혀져 가는 7년 전 나의 열정을 추모함.

[횡포] Hey,  |  2009/02/23 09:16

우리는 종종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실패 속에 이따금 희망을 얻곤 하지.

그런 이름의 희망들이 풀죽어 있던 우리에게 너무도 고마운 것들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들이 없다고 포기할 우리는 아니였어.
희망. 참, 복잡한 단어야.

물리적으로는 한 달 동안, 실질적으로는 일 년도 넘는 듯 느껴지던 짧지 않은 시간동안, 참.. 고생했어.
누군가 내게 했었던 말처럼 (너는) 할 만큼 했고, 그만큼 했으면.. 됐어.

아고라. 내가 참 좋아했던 말이야.
말했던가, 모두가 부러 목소리를 내는 것. 상대의 숨소리 하나하나를 곱씹으면서.

명확하게 말해서, 우리의 아고라는 그들의 오케스트라에 패한 것이 아냐.
아고라가 패한 것은, 아귀같이 싸우고 아무런 효능감이 없어도
목이 터져라 당신과 나의 목소리를 내는 광장을 담고, 아니 닮고 있지 않았어.

오케스트라의 승리는 비권(이라는 표현을 써서 미안)의 공약이
소위 시대적 요구에 영합해서도 아니고 복지라는 명목으로 잊혀진 역사의식을 보기좋게 걷어찼기 때문도 아냐.
그들은 '조직'을 위해 쓰인다는 회비를 비판할 지적인 수준도
청춘을 파괴적 이론에 바치지 말라고 소리칠 알량한 주체성도 갖추지 못했고,
심지어 선거를 진행하는 사람들조차 포스터 한 장, 온라인에 게시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아마추어였지만
결국 모두가 승복한다는 결과는 존재하게 된거야.
('오차율'이라는 전대미문의 유행어를 남긴 선거, 내가 아직 기자였다면 그냥 안 두지~ ^___^)

오케스트라를 지지하고도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고
고작 새 총학에의 희망사항이라는 게 이삿짐 사업을 계속 해주냐는 것인 걸 보면
굳이 내 친구가 아니어도 우리 학교는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안심이 된다만.

밥 벌어먹느라 바쁘다는 네 알량한 친구는
민주노동당에서 일한다는 후배일동이 같이 짜주었다는
그 대단한 공약을 또박또박 읽어보질 못해서 하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린데,

거기, 네가 말하고자 했던 것,
누구나 공약을 보며 학생회장으로서의 너를 규정해야 했던 것,
네가 누구인가 하는 정치적 커밍아웃. 그게 어떤 거였드라?

수많은 밤을 지새며 고민했겠지..
마지막까지도 너의 결의에 괴로웠을거야.
새로운 자리는 너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요구할 테니까.
너는 너만의 길을 찾아 살아가게 됐겠지.
너는 그 시간으로 충분히 쇄신되었을 테니까.

세상은 변혁되기보다는 변화되고 있지.
하지만 나는 전자라고, 믿고 싶어.

나는 세상에 좀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싶어.
나는 단호하지만, 언제까지라도 이 세상 속을 살아갈거야.

친구야.
아무리 큰 이상을 가진 내 친구라도 세상 속을 살아야 하고 그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해.
아마 그 방법은 우리가 보고 배웠던 90년대 학번들과는 또 다른 모습일꺼야.
2008년의 너에겐 그 고민의 흔적들을 찾을 수 없었어.

이제 네게도 대학이라는 잔치는 끝나고 진짜 너의 길은 다시 시작되겠지.

밥 한 숟가락 얻어먹겠다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사람들 손 놓지 말고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도록
우리 조금 더, 조금 더 열심히 살아가자.

네가 가는 그 길에 우리의 희망이 있다는 신념으로.

[횡포] Hey,  |  2008/12/14 21:49
1%
이젠 정말 세상이 조금은 변해, 예전대로는 우리를 속일 수 없다.
[횡포] Hey,  |  2007/06/01 08:24

  하얀거탑. 일본 야마자키 토요코(山崎豊子)의 1969년작『白い巨塔』을 원작으로 아직 소설이 연재 중이던 시기인 1966년 영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4차례 TV드라마 <아사히TV> 2회(1967년, 1990년), <후지TV> 2회(1978년, 2003년)와 1차례 라디오 드라마(일본 <문화방송>, 1965년)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후 2004년 대만을 시작으로 2006년 중국과 한국(케이블채널 스토리온)에서 방영되었으며, 1월 21일부터는 국내 케이블방송 <OCN>에서 다시 한 번 방송되고 있다. 어찌 보면 30여년이라는 생명력을 가진 작품으로 ‘원작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하얀거탑은 기존의 우리 드라마들의 무용성까지 내던지며, 진정한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는데 어색하지 않다. 상투적인 멜로전선도 아니요, 울긋불긋한 사극도 아니요, 다시 말하면 쓰기 편한 그럴듯한 사랑얘기도 아니요, 불편한 정치드라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얀거탑은 사랑타령도 아니면서 본인이 감탄을 금치 못한 ‘제5공화국’과 같은 정통 정치드라마와 같은 부담스러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어려운 얘기들은 의학적 용어라서 흘겨 들을 만하고 대부분의 얘기들은 공교롭게도 내 일 아니면 한 다리 건너 들을만한 흔한 인생사이다. 인간이란 영악한 동물이라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고, 눈을 감을 힘마저 없어지는 그날까지 야망을 품고 살아간다 해도 충분한 변론이 될 수 있을까. 아무튼 희미하게나마, 그러나 누구나 반드시 품고 사는 야망의 힘만으로도 하얀거탑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하얀거탑은 의학·정치드라마다. 하얀거탑은 원작에서부터 순수한 의학드라마, 정치드라마이기를 표방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급한 시청자들이 장르의 정체성을 논하며, 정치드라마에서 의학드라마로 전환되는 시점을 최도영(원작: 사토미 슈지)의 부각으로 보았던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드라마는 처음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이 두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물론 원작이, 의학계의 이면과 함께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그리려 했다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 후자는 의학계를 배경으로 선택함으로써 얻는 부수적 효과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하얀거탑은 리메이크작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의 하자가 있는 작품이다. 드라마로 각색된 작품들 모두가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가 대표적이다. 즉, 원작 자체가 1969년 이전의 일본 의학계를 토대로 설정되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이를 최신으로 갱신하려 하더라도 원작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일정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정치․경제․문화 등의 다양한 배경들을 통해서 한 사회의 특정 계층이 구조화되므로 일본적이라는 한계를 완전히 털어버릴 수 없었다. 물론 해결방안은 있었다. 원작을 다소 훼손하더라도 시대를 2000년대의 한국으로 완전히 재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단순히 원작을 훼손하는 것 뿐 아니라 하얀거탑의 메리트를 거의 살릴 수가 없다. 1960년대. 그 시대는 일명 일본의 단카이(團塊) 세대가 이끌어가던 시기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60~70년대에 학생운동을 경험하고 70~80년대의 경제성장을 이끌었으며 2007년부터 이들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는 세대. 즉, 격동의 일본사회 속에서 잡초와 같은 삶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또 그 야망을 이루던 세대. 이 극적인 시대상이 원작이 갖는 탁월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의학드라마적 특성으로서 드라마의 큰 줄기가 되는 의료사고 분쟁 사건의 의학적 취약성, 등장인물의 불균형성 등을 들 수 있다. 하얀거탑에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유효하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하얀거탑에서 선한 캐릭터는 모두 연약하다. 그들은 굳은 신념은 가지고 있지만, 설득력 있게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기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 시민운동을 한다는 이윤진(원작: 아즈마 사에코)은 의료사고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 좀 더 의학적이어야 하고 좀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불의에 대항할 때에 주로 감정에 호소하게 되는데, 베테랑 시민운동가라는 그가 이런 아마추어적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시민운동가라면 그러한 부조리한 사회에서 일방적인 인명피해를 당한 구조적인 현실에 분노해야 하고, 그 구조적인 현실을 이성적으로 파악해야 하며,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감정은 다분히 진실의 힘 정도에 머물러야 한다. ‘센티멘탈은 혁명의 적이다’라는 말은 본인의 동의여부를 떠나서 충분히 타당한 표현이다.

  권순일의 유가족들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감정에만 호소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리얼리티에 가깝다. 본인도 미천하지만 의료사고 관련 운동을 했었던 입장에서 지켜본 바로, 끔찍한 인명피해를 당한 유가족들이 이성적이길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당신의 희망에 가깝다. 남들이 보기에 실제 의료사고 분쟁에서 가장 유가족들이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은 바로 유가족들이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꼴 같지도 않은 병원 측의 협상카드에 드디어 손을 들었을 때이다. 본인은 이것이 타협이 아니라 좌절 혹은 절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야ː망[野望] 명사
  1)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
  2) 원해서는 안 되는 일을 바라는 지나친 욕망.
  3) 분에 넘치는 큰 포부.

  사람들이 하얀거탑에 열광하는 것은 강자에의 동경 때문이다. 사람들은 장준혁(원작: 자이젠 고로)과 같은 인간 부류를 현실사회에서는 누구보다 증오하면서도 정작 극중에서는 끊임없는 응원을 보낸다. 그래서 남성들은 마치 이러한 야망이 사회에의 노출도가 높은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열광하고, 사람들은 결말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장준혁이 개과천선을 할지언정 몰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이 하얀거탑을 단순히 드라마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 우리 사회는 부조리에 이미 너무 익숙해있다.

  다행히도 이런 야망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들은 대개 파국의 결말을 선택해왔다. 이러한 결말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허망하면서도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교육적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시 시간이 지나면 끊임없이 또 잘못된 야망을 품고 몰락하는 한 인물에 열광하고 또 너무 상투적이어서 저질이라는 삼류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연인들은 사랑고백을 한다.

  하얀거탑은 흔한 표현이지만, 권선징악적이라기보다는 인과응보적이다. 권선징악의 테마에서 선은 항상 승리해야 하는 당위적인 과제이지만, 인과응보의 테마는 좀 더 공정한 게임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예측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100년이라는 인생은 길다. 항상 옳은 일만을 하고, 항상 착하게만 살 수는 없지만 요행을 바라고 한 치 앞만을 보는 술수만으로 우리의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의 일생, 인생은 길다.

[횡포] Hey,  |  2007/02/25 00:40

우리는 民族 中興의 歷史的 使命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祖上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自主 獨立의 姿勢를 확립하고, 밖으로 人類 共榮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敎育의 指標로 삼는다.
誠實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學問과 技術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素質을 啓發하고, 우리의 處地를 躍進의 발판으로 삼아, 創造의 힘과 開拓의 精神을 기른다.
公益과 秩序를 앞세우며 能率과 實質을 崇尙하고, 敬愛과 信義에 뿌리박은 相扶 相助의 傳統을 이어받아, 明朗하고 따뜻한 協同 精神을 북돋운다. 우리의 創意와 協力을 바탕으로 나라가 發展하며, 나라의 隆盛이 나의 發展의 根本임을 깨달아,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다하며, 스스로 國家 建設에 參與하고 奉仕하는 國民 精神을 드높인다.
反共 民主 精神의 透徹한 愛國 愛族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自由 世界의 理想을 實現하는 基盤이다.
길이 後孫에 물려줄 榮光된 統一 祖國의 앞날을 내다보며, 信念과 矜持를 지닌 勤勉한 國民으로서, 民族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努力으로 새 歷史를 創造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1968년 1월 18일, 이른바 ‘건전한 생활윤리와 가치관 확립’을 위한 헌장의 제정을 지시한다. 그해 여름 박종홍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초안을 잡고, 사회의 각계 각층을 대표하는 헌장 기초위원과 심의의원 44인을 선출하여 수정작업을 거쳐 총 393자의 헌장 전문을 완성한다. 당시의 원안은 당대 가장 미려한 도덕적 한글의 전형으로서 다음과 같이 서술되었다.

민족 중흥은 우리 국민의 거룩한 역사적 사명이다. 조상의 밝고, 의롭고, 슬기론 얼을 현대에 되살려 자주의 자세를 확립하고, 합심·단결·노력과 약진 속에 창조의 기쁨과 삶의 보람을 느낀다.
타고난 성능의 계발을 바탕으로 널리 학술과 기능을 배우고 익혀, 저마다 직분에 따라 힘써 일하되, 성실한 인격에 뿌리 박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 권리와 같이 하는 의무를 줄기삼아, 협동 신의의 민주사회를 이룩한다. 국법을 지키고, 중의를 따르며, 국민의 복리에 골고루하여,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기약하고, 생산과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합리의 새 생활에, 효도와 우애, 서로의 은혜에 감사하며, 고상한 멋을 아는 전통의 미풍양속을 이어받아 국가 사회의 건전한 기풍을 일으킨다.
나라와 나는 하나인 것, 언제나 나라 사랑을 내몸같이 모든 일에 부지런하며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굳센 의지와 튼튼한 몸으로, 새롭고 우렁찬 국가 건설에 즐거이 봉사한다.
우리의 신념은 섰다. 반드시 이 땅 위에 통일조국의 빛나는 앞날이 올 것이요, 자유와,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은 나아가 인류의 이상 실현에 이바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영광의 새 역사를 창조하고 그대로 후손들에게 길이 전하자.

저 장황한 문장은 놀랍게도 8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원안은 보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으로 총 6차례에 걸쳐 수정되었다. 이 문장의 구성에 관한 홍윤기 교수의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러한 문장의 자기모순성이 의식되지 않았거나 혹은 의식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관념적 초월논리’ 때문이라고 보았다.

사실 이 문장은 여러 측면에서 1890년 10월 30일 선포된 일왕의 ‘교육칙어’와 심각하게 닮아있다.

저는 우리 일본이, 선조들의 ‘도의국가실현’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기초로 생겨난 나라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충효라는 양대 기본을 주축으로, 전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 오늘날에 이르는 훌륭한 성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는 원래 타고난 일본의 국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더불어 저는 교육의 근본 또한, ‘도의입국’을 달성하는데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모두는, 자식은 부모에 효를 다하고, 형제 자매는 서로 힘을 합쳐 도우며, 부부는 사이좋게 지내며, 친구는 서로 믿으며, 그리고 자신의 언동을 신중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손을 뻗어 학문에 힘쓰며, 직업에 전념하고, 지식을 쌓으며, 인격을 닦고, 더욱 나아가 사회공공을 위해서 공헌하며, 또 법률이나 질서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며,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신명을 다해서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선량한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 뿐만이 아니라, 또 우리들의 선조가 지금까지 물려준 전통적 미풍을 한층 밝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걸어가야 할 이 길은 선조의 교훈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바른 가르침이기 때문에, 나도 국민 여러분과 같이, 조상의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훌륭한 일본인이 되도록 마음으로부터 염원합니다.

패전 이전의 일왕의 ‘교육칙어’가 80여년 후의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과 닮아있는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당시 우리의 군부독재라는 현실에서 볼 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위 두 헌장은 매우 닮아있지만, 그렇다고 ‘국민교육헌장’이 ‘교육칙어’를 토대로 지어진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에 있어서의 ‘교육칙어’는 우리의 ‘국민교육헌장’과 마찬가지로 극우의 정신적 토대이며, 상징이다.

‘국민교육헌장’은 11월 26일, <국민교육헌장제정에대한동의의건>으로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왜 장장 1년에 걸친 ‘국민교육헌장’ 장정에 나섰던 것일까. ‘국민교육헌장’의 사전적 제정배경은 크게 4가지다. 1)조상의 훌륭한 전통과 유산이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있고, 2)물량적 발전에 비하여 정신적 가치관 사이의 조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3)국민의 국가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되어 민족 주체성이 결핍되어 있고, 4)국민교육의 지표가 불분명하여 학교교육에서 정신적 ·도덕적 교육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시대적 ·환경적 여건의 불합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국민교육헌장’을 초장·중장·종장으로 나누어, 초장에서는 한민족의 긍지와 사명의식을, 중장에서는 생활의 규범 ·덕목을, 종장에서는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고 씌여있다. 요점은 ① 민족주체성의 확립, ②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③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리하면 100점이겠다.

왜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이라는 대대적인 이념작업에 돌입하여야 했는가는 홍윤기 교수의 표현이 가장 타당하다. “박정희 권력은 일종의 ‘국가기생적 독재권력’이었으나 당시의 박정희에게는 허약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난 뒤의 그 권력과 권위의 공백을 메우면서 대중의 자발적인 복종을 끌어내어 파시즘 권력을 공고화시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도자의 안정된 권위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에게 ‘도덕적 권위’와 ‘교육의 구심점으로서의 중후한 권위’를 부여하였다. 이 ‘정신적 주문’을 토대로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해 ‘영도자적 지위’를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의 전폭적 추진과 사회지도층의 암묵적 카르텔에 의해 성공적으로 교육현장에 뿌리내린다. 모든 의식행사, 교과서, 영문판까지 도배되었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의 말기인 1978년, 연세대 성내운 교수와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이 주축으로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으로서의 ‘국민교육헌장’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교수들의 서명을 받으려다 적발되는 ‘우리교육지표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람은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퇴직과 함께 구속되었다.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에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교육헌장 개정 또는 폐기문제가 대두되었으나 흐지부지되었고, 대전엑스포가 개최되었던 1993년에 다시 거론되어, 1994년에는 ‘군사 권위주의의 잔재’로, 일제가 황국신민교육을 위해 만든 '교육칙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작년 9월 4일에는 경기도의회 진종설 의원이 “국민교육헌장은 개인과 사회,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고 앞으로 국민이나 국가가 나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라며 “도교육감에게 도내 학교에 보급할 것을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는데, 나름의 논리도 있다. “독재자의 통치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국민교육헌장은) 교육의 근본 지표를 밝힌 것”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무려 “도교육의 지표”로까지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 상당한 뒷북을 치신 바 있다. 마지막까지 그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는데, “동북공정이나 독도문제와 같이 외세와의 갈등이 첨예해져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강조되고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정신문화가 피폐해지고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는 오늘날 더욱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협박도 불사했다.

생각건대, 이 ‘국민교육헌장’은 박정희의 바람대로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만 나오면 피가 거꾸로 솟을만한 투철한 애국심을 발현시키고 있으며, 왠만한 정치적 횡포에는 이력이 난 착한 국민이 작은 체구에 밤낮없이 일하는 근성의 나라로 ‘기브 미 초코렛’과는 영원히 안녕이 아니었던가.

[횡포] Hey,  |  2007/02/10 00:37
hm

그러니까, 우리의 희망은
부동산이 잡힌다는 대통령 신년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올해 말에는 드디어 다시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횡포] Hey,  |  2007/01/01 11:59


오래 전부터 일본의 35년 식민지 역사 동안
우리가 경계, 또 경계해야 할 것은
지배 당한 우리의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우리를
우월감도, 열등감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게 만들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면 다시금 분노하게 되고,
오직 우리 자신만이
이 쳇바퀴 속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신념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덧. 최근 들어 피상적이기보다는 일본의 전반에 대한 수준있는 논의의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 테면, 한밤에 지하방 같은 곳에서 꼭 전구알로 밝히며 토론을 해야 할 것 같은 작은 모임이다.

[횡포] Hey,  |  2006/10/15 23:20